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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해후(邂逅) 현영한 목사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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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pccor.org/bbs/bbsView/20/5942974

1. 

여름 땡볕 더위가 매일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던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사막 가운데서 보인다는 ‘신기루’ 같은 소식을 받게 되었다. 45년 전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미국으로 이민 갔던 내 친구 JP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 될 무렵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그렇게 이민을 떠나고 난 뒤 성인이 되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30대 중반의 젊은 목회자로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틈나는 대로 늘 그 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엘에이 한인 포털 사이트에 ‘만남의 광장’이란 게시판에 내 친구 JP를 찾는다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며칠 뒤 중학교 후배라는 사람이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안다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보내준 것이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왠지 내가 찾는 그 친구의 전화번호라는 확신이 들면서 바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 난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떠나갔던 내 친구 JP임을 알아 봤고, 그 친구 역시 내 이름과 성을 바꿔 부르긴 했지만 바로 자기 절친 이었던 ‘나’임을 금방 알아보고는 너무나 반가워했다.

2. 

세상에나,, 

45여년이 지났는데도 마치 중학생 시절의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해후(邂逅)를 하였고 우린 오래된 창고 안에 묵혀있던 옛날 헌 옷들을 꺼내듯 우리가 기억하는 별별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개구 졌던 중학생들처럼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또래들 사이에서 비교적 힘 좀 썼던 나는 동네 어느 놈이 내 친구 JP를 자꾸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 주저함없이 세계적 무비스타였던 이소룡의 ‘쌍절권’을 들고 비장한 각오로 그 놈의 집까지 찾아 간적이 있었다. 소문으론 그 놈이 제법 쌈 좀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일단 큰 소리를 친 이상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그 친구를 불러내기 위해 그 집 대문 앞까지 와서 그 친구 이름을 불렀지만 다행히(?) 그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큰 아쉬움의 표정으로 만들고는 호기스럽게 그 친구와 함께 빨리 집으로 돌아섰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난, 내 친구 JP에게 꽤나 멋진 의리의 친구였음을 확신시킬수 있었다.   

그랬던 그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한 동안 몇 번 손 편지로 소식을 나눴고 얼마 안가서 영영 연락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그 후 난 30대 중반이 되어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그 친구의 소식을 궁금해지면서 늘 버릇처럼 지난 23년 동안 미국내 어딘가 살고 있을 내 친구 JP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중 펜대믹 사태로 지치고, 뜨거운 여름 더위에 더 지치던 때에 내 친구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난 어떤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저 막연하게나마 내 친구 JP가 엘에이 근교에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어디서에도 그 친구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게 되면서 이젠 영 만나지 못하나..생각 했는데.. 너무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연락이 된 것이다. 

그 친구는 날마다 오전이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매일 아침드라마처럼 들려주었다. 특히 자기보다 13살 연하인 젊은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자랑 하기에 은근히 부러워하는 척도 해주면서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의 기적 같은 해후(邂逅)를 그렇게 매일 풀어갔었다. 

그 친구는 내가 상상했던 의사나 변호사가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잘 나가는 비즈니스 맨으로 성공을 했다고 자랑을 했다. 물론 그 친구와 가족 역시 처음 미국에 이민 와서 많은 고생을 했었는데 부모님이 시애틀에서 유명한 oo테리야키 식당을 하면서 소위 대박이 났다고 했다. 너무 식당이 잘돼서 내 친구 JP도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식당 사업에 뛰어 들어 7개의 체인점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참 놀랐던 건, 그 친구가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사는 줄 알았는데 내가 6년 동안 목회를 했던 시애틀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지역에서 서로 살고 있었는데도 서로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그 후, 그의 가족은 산호세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큰 일식당을 개업 했는데 얼마 안가서 바로 식당 건너편에 구글 회사가 들어오면서 또 한 번 큰 성공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떠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셰일가스 개발로 경제적 급성장을 이루고 있는 North Dakota 주에서 큰 일본 식당을 하려고 준비 중에 있고 근처에 새 모텔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공사 중인 사진도 보내 줬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친구가 하는 사업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게 큰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내 친구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난 늘 그 친구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했었는데,, 그렇게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에 너무 대견스러워 했고, 내 집사람을 비롯해서 주변에 사람들에게도 마치 나에게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자랑하기도 했었다. 

더욱 감사했던 건, 내 친구 JP도 한인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말에 더욱 감사했고, 내가 한인교회 목사인 것에 대해서도 놀라하면서 나의 경제적 상황까지도 세심하게 묻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도 했다. 당연이 난 그러겠노라고 대답과 함께 그런 관심을 가져준 친구가 고맙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성공한 친구를 둔 내 자신이 기특해보이기도 했다. 

4. 

한 번은 나에게 자기 아들이 미국 석유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내년 쯤 아들이 시작하는 스타트업 회사 주식을 사라고 하면서 나중에 대박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난 가난한 목회자라 그런 주식에 투자할 돈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다고 정중하게 사양을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못이기는 척 하고 도대체 어떤 회사인지 들어나 보자고 해볼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 후 한 주간동안 매일 오전이면 내 친구 JP는 늘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그 때마다 자기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필요이상으로 자세히 해주었고 난 그 친구를 위해 약속한대로 저녁때면 두 손 모아 내 친구가 하는 사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늘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특히 그 친구가 며칠 뒤면 일본에 가서 식당 비즈니스를 위해 직접 구매한 장비들과 일본 술(사케)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떠나는데 이 일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한국도 들려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돌아 올 예정이라고 하면서 보낸 장비와 물건들이 워싱톤주 타코마 항에 도착하면 그때 서로 만나자는 약속까지 했다. 

난 나의 두 딸이 시애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고 그 때부터 그 친구와의 만남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려지기도 했다. 

5. 

그런데, 일본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내 친구 JP에게 갑자기 장문의 글이 카톡으로 왔다. 자기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20만불 정도의 식당 장비와 일본 술(사케)을 미리 주문 생산을 해서 준비했는데 이것은 개인이 선적해서 미국으로 보낼 수 없고 미국에 있는 무역회사를 통해서만 보낼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 미국 무역 회사랑 연락중이라는 소식이 온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젊고 예쁜 부인은 장인과 장모님을 모시고 쿠바 여행중이라서 와이프와도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말을 그렇게 장황하게 알려주었다. 난 속으로,, 내 기도가 많이 부족한 건가,, 라는 자책감도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니, 그렇게 큰 사업을 하는 놈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그 많은 물건을 주문을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역시 잘 모르는 상황이니 그런 어려움을 당한 친구 소식을 듣고는 함께 마음 조리며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아침저녁으로 카톡으로 자기 근황을 알려 주면서 쿠바 여행 중인 자기 와이프에게 연락이 안온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자기 와이프가 미국 무역회사에 계약금을 보내줘야 되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푸념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마도 쿠바 지역엔 인터넷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는 거니 너무 염려 말라고 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위로를 했다. 

6. 

일본에서 3일째 되는 금요일 오전에 다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내 친구 JP가 얼마나 급했는지 다짜고짜 나에게 다음날 토요일까지 미국에 있는 무역회사로 통관비용을 보내 주지 않으면 자기가 큰 낭패를 겪게 된다고 하면서 $14,000 달러를 나에게 대신 보내달라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 여행자 수표만 가지고 있는데,, 무슨 어쩌고저쩌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자기가 지금 일본에서 돈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보러 이 돈을 대신 보내달라고 하는 거였다. 먼저 나에게 보내줄 수 있는 상황인지 묻지도 않고 무조건 보내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돈을 받을 수취인의 은행 정보를 보니 미국 무역회사가 아닌 한국사람 이름으로 돼 있는 것이다. 도대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아니, 14,000달러는커녕 1,400달러도 통장에 없는 나에게 그런 큰돈을 보내라니,, 게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무조건 보내라고 하면 어느 누가 선 듯 보낼 수 있겠는가? 너무 황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내 친구 JP에게 내 사정 이야기를 했고 지금 형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내 딴에는 그 친구의 맘이 상하지 않게 잘 설명을 했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한 시까지 무역회사에 돈이 들어가야 자기가 일본에서 물건을 보낼 수 있다고 하면서 한국 가면 바로 빌려준 돈도 갚고 크게 보상까지 해주겠다고 하면서 계속 문자가 오는 것이었다. 

난 그제야 먼가 쎄~ 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45년 만에 만난 친구한데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내가 분명히 그저 소박한 시골교회 목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무조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좀 마련해서 꼭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일인지,,, 도무지 납득이 안됐다.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이제야 뭔지를 순간 느낄 수 있었다. . 

차라리 보이스 피싱 이었다면 욕이라도 한 번 하고 끝냈을 텐데..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찾았던 오랜 친구가 너무나 어설픈 상황극을 만들어 나에게 돈을 요구하는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정중하게 친구의 사정은 잘 알겠지만 난 지금까지 모든 경제권은 내 집사람이 가지고 있기에, 그런 돈이 있어도 와이프 허락 없이는 도저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전했고 그 뒤부터 계속 오는 그의 카톡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그 친구도 갑작스럽게 무리한 부탁을 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미국에 살면서 그만한 돈($14,000)도 없이 그렇게 살고 있냐고 비아냥거리듯 말을 하고는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나는, 혹시라도 그 친구의 말이 다 맞는 상황이었고 정말 나밖에 그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나 스스로에게도 의심을 해보았다. 만일 그랬더라도 그만한 돈은 보낼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우정은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보내준 사진들과 그가 나열한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첨부터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내 판단이 잘못일지 몰라서 가깝게 지내고 있던 선배 목사님께 카톡 내용을 보여 줬더니 읽자마자 바로 나에게 앞으로 더 이상 연락을 나누면 안 될 사람이라고 충고를 듣게 되었다. 

7. 

중학교 2학년, 아직 앳된 얼굴에 불긋불긋 여드름이 피어나던 그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의 극적인 해후(邂逅)는 45년 동안 간직해둔 나의 소년 시절의 추억을 산산이 깨뜨리게 만든 기막힌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근데 참 희한한 건,. 그 놈, 지금 밥이나 잘 챙겨 먹고 있나,, 염려가 된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영원한 생명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요 15:15)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신감을 안겨줬던 그런 불쌍한 친구였음을 스스로 자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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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심우성 2021.7.24 23:48

    목사님, 글 잘읽고 갑니다. 읽다보니 생각나는게 있어 적어 봅니다. 믿음 생활을 늦게 시작한 저로써는 어떤 목사님의 말씀 중에 사람을 믿지 마라는 말씀이 처음에는 많이 이상 하였습니다. 인본주의와 유교 문화에 오랫동안 삶의 기반을 두고 있던 저에게는 사람을 믿지 마라는 말은 독선적이고 이단처럼 느끼어 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목사님의 그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것 같네요. 사람은 사랑하고 궁휼히 여길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닌걸.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 코발리스교회 2021.7.25 11:25

    아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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