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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기도와 구제

관리자 2018.08.09 01:44 조회 수 : 49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기도’라고 말할 것입니다. 기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기도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건 응답 받는 기도가 돼야 정말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정말 더 답답할 수도 있고 하다가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또 어떤 때는 기도 응답이 없을 때 도리어 시험이 들어서 신앙에 깊은 상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내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건 아닙니다. 대답을 안하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듯이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 ‘No’나 침묵으로 하는 경우도 응답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응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서 서운하다는 겁니다.

많은 기도가 다 바로 응답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응답받는 기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지만요 대부분 예수님을 처음 믿고 신앙생활 할 때 정말 신기하게도 기도 응답이 빨리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사소해 보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심각해진 상황을 두고 기도를 했는데 금방 응답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처음 교회 다닐 때 아버지 반대가 좀 심했습니다. 때론 채벌까지 하시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주일 저녁 예배가 있을 때인데요, 두 달에 한 번 정도 학생 성가대가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녁 늦게 까지 예배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무지 화를 내셨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저녁 예배 후 늦게 집에 오게 되면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아직 집에 안들어 오게 해주세요 ..” 그럼 정말 신기하게도 아버지께서 아직 집에 안 들어오신 겁니다. 결국 나중에는 아버지께서도 허락을 해주셔서 잘 다니게 되었지만 한 동안은 교회 다녀오는 것이 어린 저에게는 거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아쉬운 건, 그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그렇게 잘 들어 주신 때였더라면 차라리 아버지가 예수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 같이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그 기도는 안하고 아버지가 집에 늦게 들어오시게 해달라고 한 기도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금방 이루어진 기도를 경험하니까 정말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 같고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모름지기 기도는 응답 받는 기도가 돼야 좋은 겁니다.

 

그런데 응답 받는 기도보다 더 소중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 사실 “응답 받았다”라고 하는 기도는 대게 자기 자신의 문제가 해결 받았거나 아니면 자기와 연관된 어떤 문제가 응답 되었다고 하는 의미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응답 받는 기도의 성격은 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것은 결코 안좋다는 말이 아니라 중요하긴 하지만 대부분 자신을 위한 기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상달 되는 기도란 무엇이냐 하면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관심있어 하시는, 즉 하나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바로 “상달 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물론 응답받는 기도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 상달 되어서 응답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 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자녀들이 그토록 원하는 일이기에 그냥 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하나님도 때론, 아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베푸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뜻과 자식들의 마음이 많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일치할 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는 하는데 사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뜻과 정 반대일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의 기도가 마치 때를 쓰는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기도안하는 것 보다 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구하는 기도의 성격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상달 되는 기도란 무엇이냐? 이것은 정말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결코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위하고 정말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내 아픔보다 더 아파하며 기도하는 이타적인 성격을 띤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실 제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래도 역시 자기 자신의 문제 가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다리 건너서 기도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간절함이 덜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뛰어 넘어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느껴가면서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하나님께 상달 되는 기도가 될 것이고 이런 기도를 통해 더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게 되면 로마 군병의 고넬료라는 사람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환상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말은 바로 고넬료의 기도는 자신 뿐만 아니라 어렵고 불쌍한 이들을 직접 나서서 구제하며 행했던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합당한 상될되어 기억하신 바가 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기도와 구제의 삶 역시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기억 가운데 새겨지는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는 기도와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마음의 다짐을 해보게 됩니다.

 

현영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