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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현영한 목사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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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흔히 기독교는 세계 4대 종교(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현재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천주교)과 동방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전체를 포함해서 전 세계 교인이 약24억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에 여러 분파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서로 각기 다른 종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종교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를 갖는 의미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od News)을 종교적 교리로 보는 사람은 마치 강아지 한 마리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진짜 같은 강아지 인형을 선물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린 아이 대부분은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갖고 싶어 합니다. 자기들이 키우지도 못하면서 늘 부모님들한테 강아지나 고양이를 갖고 싶다고 조르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에게 어느 날 부모님은 하얀 털이 복슬 거리는 진짜 강아지보다 더 귀엽고 예쁜 강아지 인형을 선물 해 주었습니다. 강아지 인형의 까만 눈동자는 마치 살아있듯 반짝이고 배 밑에 달린 스위치를 켜면 멍멍 짖기도 하고 뒷다리와 앞다리를 움직이며 걷기도 합니다. 심지어 따듯한 체온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도 신기한 인형을 받아든 아이는 처음엔 머뭇거리지만 살아있는 강아지보다 더 예쁘게 생긴 인형에 금방 재밌어 하며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보는 눈이요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믿는 사람은 강아지를 정말 갖고 싶어 했던 자녀가 이제 막 어미 젖을 뗀 새끼 강아지를 선물로 받은 것과 같습니다. 어린 자녀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너무 예쁘다고,, 고맙다고,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강아지 보다 더 예쁘고 재밌기도 하고 함부로 짖지도 않고 스위치를 켰을 때만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을 가지고 놀던 아이는 이제 점점 커감에 따라 강아지 인형과 재밌게 노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러다가 강아지를 책장 선반 위에 올려두고 나의 어린 시절 재밌게 놀았던 장난감으로 고이 간직하거나 아니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강아지를 선물 받은 아이는 점점 커감에 따라 강아지도 함께 커가면서 아이와 강아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기독교 신앙을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진열장에 오른 강아지 인형처럼 먼지가 쌓인 체 두기도 하고 환경이 바뀌거나 생각이 바뀌면 종교를 바꾸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으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실한 믿음과 소망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영원한 생명입니다. 

바로 이 같은 진리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를 도우시고 함께 하실 겁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 

 

현영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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